본문 내용 바로가기

언어선택

기후변화 News

기후변화 대응 관련 국내 정책·시장동향 정보를 제공합니다.

기후변화 News 상세보기
제목 창덕궁 뽕나무·회화나무도 천연기념물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청장 유홍준 兪弘濬)은 '창덕궁의 뽕나무'(사진)와 '창덕궁의 회화나무'를 14일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했다.
문화재청은 궁궐과 능·원 등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보존되고 있는 노거수 및 수림지를 발굴하기 위해 지난해 일제 조사를 실시 그 결과에 따라 지정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금번 지정 예고하는 '창덕궁의 뽕나무'는 관람지 입구에 있으며 나무높이 12.0m, 가슴높이 줄기직경 72.5㎝, 수령 약 400년으로 수세가 좋고 아름다운 수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뽕나무는 조선시대에 친잠례 거행 등 궁궐의 양잠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 수목중의 하나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매우 큰 나무다.
'창덕궁의 회화나무'는 창덕궁 돈화문을 들어서면 관람로 양쪽에 서있는 회화나무 8그루며 나무높이 15∼16m, 가슴높이줄기직경 90∼178㎝, 수령 약 300∼4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나무들은 1820년대 중반에 제작된 '동궐도(東闕圖)'에도 그려져 있어 조선시대 궁궐의 배식 기준과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나무다.
현재 창덕궁내에는 '창덕궁의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와 '창덕궁의 다래나무(천연기념물 제251호)' 2건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큰 궁궐의 노거수를 발굴·보존해 궁궐 속에 특별히 자리하게 된 노거수들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찾는 작업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지정 예고한 '창덕궁의 뽕나무'와 '창덕궁의 회화나무'는 30일간의 예고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 지정절차를 거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게 된다.
창덕궁의 뽕나무 '창덕궁의 뽕나무'는 관람지 입구 창경궁과 경계를 이루는 담 주위에 위치하며 나무높이 12.0m, 가슴높이 줄기직경은 72.5㎝로 뽕나무로서는 보기 드문 노거수일 뿐만 아니라 창덕궁내 뽕나무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수형이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수세도 좋은 편이다.
뽕나무가 이곳 창덕궁의 후원에 자리잡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예로부터 조선은 농본사회로 '농상(農桑)'이라는 말에서 전하듯 농사와 함께 뽕나무를 키워 누에를 쳐 비단을 짜는 일은 조선시대 나라의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였다.
나라에서는 양잠을 권장하기 위해 궁의 후원에 뽕나무를 심어 가꿨는데 조선조 궁에 뽕나무를 심었다는 최초의 기록은 '태종실록'(태종 9년 3월 1일) 태종 5년(1405) 창덕궁을 건립한 이래, 태종 9년(1409) 중국 주(周)나라 성왕(成王)의 공상제도(公桑制度)를 본따 궁원(宮園)에 뽕나무를 심도록 명한 것이 공식적인 최초의 기록이다.
'태종실록' 외에 '성종실록'에도 왕이 승정원에 양잠의 중요성을 말하며 후원에 뽕나무를 식재토록 하고 후원에서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고 인간에서 처음으로 누에치는 법을 가르쳤다는 신인 서릉씨(西陵氏)에게 제사를 지내는 친잠례(親蠶禮)를 거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양잠은 예로부터 나라의 귀중한 산업으로 왕실에서 뽕나무를 매우 중요시 여긴 수목이었으며 근대에도 창덕궁 후원 주합루 좌측 서향각에서 1911년 조선총독부가 양잠소로 만들고 친잠례를 거행했다. 주합루에서도 1925년 6월 17일, 1929년 6월 15일, 1939년 6월 26일 친잠례가 거행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창덕궁 후원의 뽕나무는 조선시대 양잠의 중요성을 홍보하기 위한 궁 후원 뽕나무 식재와 친잠례 거행 등 궁궐 역사의 일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수목으로 우리가 보호·관리해야 할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매우 큰 소중한 문화재다.
창덕궁의 회화나무 '창덕궁의 회화나무'는 창덕궁 돈화문을 들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는 관람로 양쪽의 회화나무 8그루로 나무높이는 15∼16m, 가슴높이줄기직경은 90∼178㎝에 이르는 노거수다.
회화나무는 궁궐 입구에 특별한 사유를 가지고 심어 가꾸어 왔는데 창덕궁 돈화문 주변은 궁궐의 삼조(三朝) 중 조정의 관료들이 집무하는 관청이 배치되는 공간인 외조(外朝)의 공간에 해당되는 곳으로 궁궐 입구 주변에는 예로부터 중국 궁궐 건축의 기준이 되는 '주례(周禮)'에 따라 회화나무를 심었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외조(外朝)는 왕이 삼공(三公)과 고경대부(孤卿大夫) 및 여러 관료와 귀족들을 만나는 장소로서 이 중 삼공(三公)의 자리에는 회화나무(槐)를 심어 삼공(三公) 좌석의 표지(標識)로 삼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회화나무는 삼공 위계(位階)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面三三槐三公位焉<「周禮」, 秋官, 朝士>')
회화나무는 가지의 뻗음이 제멋대로 인데 이를 두고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다 해 '학자수(學者樹)'라고도 부르며 영어이름도 'Scholar Tree(학자나무)'라 한다.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는 양반 동네 입구에 오래된 회화나무를 볼 수 있는 것도 이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돈화문 앞에 남아 있는 회화나무는 1820년대 중반에 제작된 '동궐도(東闕圖)'에도 그려져 있으며 조선시대 궁궐의 배식 기준과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노거수로 판단된다. 출처: 에코저널 (06-02-14)
파일
원문보기 View Original
분류 국내 정책동향
Category Policy trends
출처
기후변화 News 이전글 다음글
이전글 대구시 '담장허물기' 참여희망자 접수
다음글 오염물질 배출사업장 점검 강화
TOP